2014.04.12 17:59

숭모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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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모사1.jpg

청산도의 부흥리 대봉산 기슭에는 귤은 김류를 배향하는 숭모사라는 사당이 있습니다.

거문도 출신의 김류가 어떤 사연이 있어 청산도와 인연을 맺게 되었고,

마침내 숭모사라는 사당에 배향까지 하게 되었던 것일까요?

 

김류(1814~1884)는 어려서부터 거문도 서도의 만회 김양록, 장흥의 남파 이희석, 추려 김대원 등과 교류하면서

학문을 정진하였던 중, 자신의 학문에 자부심이 생겨 과거 시험을 보기 위해 서울로 향하였으나,

장성에서 성리철학의 대가 노사 기정진을 만나고서 뜻을 바꾸어

그의 문하에서 수학하고 고향 거문도로 다시 돌아와 낙영재를 세워 후학을 양성하는데 심혈을 기울입니다.


숭모사2.jpg


그런 김류가 문득 청산도로 건너가 후진을 양성하다가 1884년 그곳에서 생애를 마친 이유는 무엇일까요?

 당시 남서해의 도서연안지역은 의외로 바다를 통한 인적물적 교류가 활발했습니다.

거문도에서 태어난 김류는 바다에 익숙하고 배를 부릴 줄 알아 남서해의 섬과 바다를 주유했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노사학단 뿐만 아니라 청산도의 문인 모임인 해사(海社)

다산 학인이 중심이 된 강진의 문인 모임인 연사(蓮社) 등과도 폭넓은 교류를 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김류가 청산도에 옮겨간 시점과 내력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적습니다.

어려서 청산도 출신의 산성(山城) 김만형(金萬衡)이 유촌에 세운 서당에서

배운 적이 있었던 인연 등도 작용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또한 청산도 청계리에서 청계재를 운영하던 청산도의 학인 지승문의 초청으로 왔다는 설도 있긴 하지만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숭모사3.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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