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도는 신라시대부터 많은 주민이 살았다고 추측되나
구전에 의한 것이며 기록은 찾아볼 수 없고,
고래시대에 탐진현(현 강진군)에 속한 곳입니다.
그후 임진왜란을 계기로 왜적의 침입이 빈번해지자 정부의 도서금주령에 의해
한때는 사람이 살지 않았던 곳입니다.
이후 숙종 7년 수군만호진이 설치된 이후부터는 서남해안을 방어하는 군사적 요충지로서의 역할을 담당하였습니다.
고종 3년 청산도에 청사진이 설치되면서
당리에 청산진성이 축소되었고
이때 진성의 높이는 15척, 길이 10리, 동서남 3개의 문을 두었습니다.
당시 청산진의 군사는 420명이 었고, 당리마을 안으로는 매일 시장이 되었습니다.
성내 호구 수는 약 460여 호였고, 인구는 약 2000여명 (1465명, 여1150명) 이었습니다.
현재 청산도 인구가 2600여명에 비하면 당시 꽤 많은 인구가 사는 섬이라고 할 수 있었습니다.
청산진성에서 바라 보이는 도락리의 서편제 길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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